봄, 아름다운 시절의 하루를 꿈꾸다
하루를 머물면 하루만큼 더 그리워지는 곳, 체코
<프라하 구 시가지와 프라하성을 잇는 블타바강 위의 카렐교. ⓒShutterstock_Koverninska Olga>
다시 안녕,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이다.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이들이‘프라하의 봄’이라 명명한 시절이 피었던 곳. 사실 그 무렵은 프라하뿐 아니라 전 세계가 봄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68혁명, 반전운동, 우드스톡, 히피, 프로그레시브 록…. 여러 이름을 가졌지만 사실 하나였던‘자유에 대한 열망’이 젊은 가슴들을 헤집어놓지 않았던가. 광장을 에둘러 구시가 쪽으로 걸어가면서 내내 봄과 자유의 상관관계를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사람들의 봄에 대한 애정은 좀 유별나다. 새여름, 새가을, 새겨울이라는 말은 없지만‘새봄’은 사전에도 떡하니 이름을 올리지 않았나. 인간의 의지가 실린 계절인 봄. 게다가 한번 봄이 오면 다시 새봄이 올 때까지 계절은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자유는 봄인가 보다. 인간의 의지로 일단 시작하면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빨간 지붕과 좁은 골목, 따스한 노란 불빛이 프라하 하면 떠오르는 한 장의 이미지를 만든다.>
일상과 떨어진, 더 솔직하게 말해 밥벌이와 상관없는 생각을 진지하게 할 수 있다는 건 낯선 도시로 여행을 떠나는 큰 이유 중 하나다. 여행.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 여행 중인 건가? 새로운 의문을 애써 외면하며 이 도시의 공기를 크게 들이마신다. 하벨 시장에 들러 박수를 치면 깔깔 소리를 내는 마녀 인형과 놀기도 하고, 과학이 발달해 명을 다했지만 여전히 내게는 매력적인, 천동설에 근거해 만든 구 시청사의 천문시계도 꼼꼼히 뜯어보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카렐교가 보인다.
<카렐교 위에 자리한 얀 네포무츠키 동상. 동상을 만지면 소원을 이뤄준다는 속설이 있어 사람들의 손길이 닿은 동상 하단은 늘 반짝인다.>
맞다. 그 카렐교다. 10여 년 전 봄, 돌이켜보면 여전히 어렸던 시절에 채 익지 못하고 떨어진 사랑-세계 때문에 침몰하던 나를 스스로 구원해보고자 훌쩍 떠난 곳이 프라하였다. 그때 가장 먼저 찾았던 곳이 바로 소원을 이뤄준다는 얀 네포무츠키 동상이 있는 카렐교였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간절한 소망을 빌면서 동상을 쓰다듬었다. 물론 오늘도 나는 동상을 쓰다듬고 소원을 빌었다. 이번엔 나의 봄, 나의‘벨 에포크’가 더 늦기 전에 도래하기를 바랐다는 점이 다르지만.
<황금소로 안 갑옷 갤러리에 전시된 중세 시대의 갑옷들.>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가능한 한 천천히, 600년이 넘은 이 오래된 다리가 무너질 것을 걱정하는 사람처럼 천천히 다리를 건너 프라하성을 향해 가다 성 니콜라스 성당을 떠올리고 되돌아와 잠시 들렀다. 예전에 읽은 여행 가이드북의 내용이 얼핏 떠오른다. 모차르트가 연주했다는 파이프 오르간이 남아 있고, 그가 사망했을 때 추모미사가 열린 곳이다. 프라하는 많은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은 도시다. 모차르트도 그중 하나다. 물론, 모차르트는 자신의 고향인 잘츠부르크나 비엔나의 관객보다 프라하 사람들이 자신의 오페라‘피가로의 결혼’에 열렬한 사랑을 보내주었기 때문에 프라하를 사랑했다. 오죽하면“오로지, 온통‘피가로’라네!”라는 편지를 썼을까. 그가 프라하를 위해 작곡했다는 교향곡 제38번 D장조‘프라하’는 사실 그가 이 도시를 방문하기 전에 쓴 것이어서 처음부터 프라하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아무렴 어떤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한국 관객의 열렬한 환호는 에미넴이 하트도 만들게 하는 것을. 교향곡 한 곡 뚝 떼어 주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일일 게다.
<성 비투스 대성당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중에서도 수작으로 꼽히는 무하의 작품>
프라하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또 하나의 성당, 성 비투스 대성당에도 들렸다. 다시 프라하에 가게 된다면 성 비투스 대성당에 꼭 한 번 가고 싶었다. 마음의 여유도, 비용도 넉넉지 않던 시절, 핫 스폿만 찍고 다니기에 급급하던 시절에는 들르지 못했던 곳이라 두고두고 후회가 남았던 터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져 성당으로 뛰어들듯 들어가니 사진으로만 보았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앞에 펼쳐진다. 성당을 장식하기 위한 목적이 더 컸겠지만 어찌 됐던 가난해서 글을 배우지 못한 이들에게 성경 내용을 직관적으로 보여주었고, 그래서‘가난한 자들의 성경’이라 불리는 스테인드글라스 너머로 하느님의 말씀을 모든 사람과 나누고 싶었던 예술가의 마음이 전해져오는 듯하다. 특히 서쪽 측랑의 왼쪽에 있는‘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는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화가 알폰스 무하의 작품. 그의 독특한 화풍이 빛과 만나 더욱 몽환적으로 반짝인다.
<프라하의 야경은 세계 최고의 야경 중 하나다.>
그러나 스테인드글라스가 선사한 성스러운 감동도 배고픔을 어쩌지는 못한다. 성당에 뛰어들던 것보다 빠르게‘꼴레뇨’를 잘하는 레스토랑을 찾아 들어갔다. 소원을 두고 와서인지, 지난 여행 후 뜬금없는‘프라하 앓이’를 겪을 때마다 떠올랐던 꼴레뇨는 돼지 정강이를 하루 동안 소금물에 담가 잡내를 없애고 오븐에서 8시간 동안 천천히 익힌, 아주 담백한 슬로푸드다. 맥주가 물보다 저렴한 나라 체코에서 맥주도 빠질 수 없다. 그러고 보니, 맥주? 이 맥주를 다 마시면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을까? 혹시나 하는 기대에 어둠이 내려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맥주 잔을 집는다.
<18세기에 시간이 고정되어 있는 듯 클래식한 도시인 체스키크룸로프. 에곤 실레 또한 이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을 사랑해 잠시 머무르기도 했다. ⓒShutterstock_Grisha Bruev>
영혼의 안식처, 심신의 쉼터
역시 맥주는 체코지, 라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풍경은 체스키크룸로프다. 어느 해 이후 언제나 나의 버킷리스트에 올라 있던 곳. 18세기 이후에 새로 지은 건물이 거의 없어 중세의 먼지도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한, 오래된 윤기와 클래식한 낭만이 살아 있는 곳이지만 이곳이 나의 버킷리스트에 오른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클래식과는 거리가 좀 있는, 에곤 실레 때문이다. 몇 해 전 서울에서 열린 전시회에 갔다가 에곤 실레의 강렬한 작품 앞에서, 허풍을 좀 보태자면 스탕달이 귀도 레니의‘베아트리체 첸치’를 보고 무릎에 힘이 빠지며 황홀경을 느꼈다는 데서 유래한‘스탕달 신드롬’을 경험하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실레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화가지만, 독감 때문에 더 이어지지 못한 28년의 짧은 생애 중 일부를 어머니의 고향인 이곳에서 살며 안식을 찾으려 했다. 당시 이곳에서 그린 그림이‘노골적이고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쫓겨났지만 결국 그를 기리는 박물관이 세워진 곳이 바로 이곳, 체스키크룸로프다. 그가 그린 체스키크룸로프의 풍경과 소녀들의 누드가 세계의 수많은 나 같은 사람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카를로비바리 곳곳에는 온천수를 마시며 사교를 즐기던 장소인 콜로나다가 남아 있다. 사도바 콜로나다. ⓒLadislav Renner>
그런가 하면 카를로비바리는‘마시는 온천수’ 때문에 가보고 싶었다. 여기 사람들처럼 손잡이의 구멍이 빨대 역할을 하는 온천수 전용 컵‘라젠스키 포하레크’에 한가득 온천수를 담았지만 쉽사리 용기가 나지 않는다. 소심하게, 오플라트키 와플을 먼저 한 입 베어 물고 한 모금 마셔보니 짭조름하면서도 비린 온천수의 맛이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
<온천수 전용 컵 ‘라젠스키 포하레크’.ⓒShutterstock_Saudade Creative>
컵을 몇 개 사서 선물하면 좋겠다며 이제야 멀리 있는 이들을 떠올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벨…?
테이블 위의 전화기를 집어 통화를 끝내고 시간을 보니 카페에 들어온 지 채 30분이 되지 않았다. 강과 모차르트, 무하와 맥주 한 잔이 가져다준 잠깐의 꿈. 문득 카렐교 위에서 빌었던 소원이 생각난다. 나의 봄, 나의 벨 에포크…. 호접몽을 꾸고 나니 알겠다. 관계와 기대에 부대끼며 청춘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진다는 느낌에 때때로 슬펐던 지난 시간이 사실은 내가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는 시간이었음을. 그리고 지금, 당장 마음만 먹으면 프라하로 떠나는 비행기표를 예약할 수 있는 오늘이야말로 나의 봄이 한창인 와중이라는 것을.